폐산업시설이 관광명소로 재탄생하다! 문화비축기지, 문래창작촌, 졸퍼라인 등 국내외 산업유산 재생 사례를 통해 본 조경의 역할과 설계 전략. 장소성과 감성을 살린 조경이 어떻게 과거의 공간을 지속가능한 미래로 바꾸는지 살펴보세요.
폐산업시설을 관광지로! 조경이 바꾼 산업유산 재생 사례
1. 들어가며 – 녹슨 철골에 꽃이 피다
한때 산업의 상징이었던 공장, 항만, 발전소, 폐광과 같은 시설들이 기능을 잃고 폐허로 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공간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조경은 이 잊힌 공간들을 다시 사람의 공간으로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시재생의 시대, 조경은 단순한 환경개선의 차원을 넘어 산업유산을 감성적, 생태적, 관광적으로 해석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폐산업시설의 재생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이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을 해석하고, 자연과 문화, 사람들이 다시 이곳에 스며들도록 만드는 일이다. 조경가는 이 과정에서 경관을 회복하고, 동선을 설계하며, 생태를 복원하고, 기억을 새롭게 재현한다. 이 글에서는 국내외 폐산업시설 재생 관광지 사례와 함께 조경이 어떤 식으로 개입하고, 어떻게 감동적인 공간으로 전환하는지를 살펴본다.
2. 조경이 참여하는 산업유산 재생의 역할
1) 장소성 해석과 경관 전략 수립
- 산업 유산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쓰임에 맞는 공간구조 설계
- 기존 구조물(배관, 탱크, 철탑 등)과 식재, 수공간, 쉼터의 조화
2) 관광지 컨셉 및 스토리텔링 구상
- 단순 재생이 아닌 '왜 이 공간을 다시 찾게 될까?'에 대한 이야기 구조 설계
- 산업유산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짓는 해석적 테마 도출과 경험 콘텐츠화
3) 전체 마스터플랜 및 복합 기능 통합 설계
- 조경이 주도적으로 진입부, 핵심시설, 휴게공간, 체험존, 순환 동선을 유기적으로 설계
- 복합 문화·예술·상업 콘텐츠와 자연환경의 통합 계획 수립
4) 공간 동선 및 체험 설계
- 기존 시설의 레이아웃을 활용한 순환형 동선 구성
- 전망포인트, 루프탑, 고가동선 등 입체적 이용 유도
5) 녹화 및 생태복원
- 오염된 토양 정화 및 식생 복원
- 산업구조물에 덩굴식물, 그린루프 등으로 자연 입히기
6) 감성 콘텐츠 연출
- 야간조명, 인터랙티브 설치물, 옛 장비 활용한 조형 연출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정서적 장치 설계
3. 국내 주요 사례 분석
문화비축기지 (서울 마포)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인근에는 한때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되었던 공간이 있었다. 1976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석유 공급의 불안정을 경험한 우리나라는 서울 내 비상용 석유를 저장하기 위한 비축기지를 조성하였다. 2000년까지 사용된 이 시설은 이후 17년간 방치되었지만, 2017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 문화공간 '문화비축기지'로 새롭게 탈바꿈하였다.
조경은 이 사업에서 기존의 원형 탱크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생태적 흐름과 문화적 활동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경관을 계획했다. 6개의 원형 탱크 중 일부는 실내 공연장, 전시장, 카페 등으로 전환되었으며, 나머지는 녹화된 오픈 파빌리온, 쉼터, 수변광장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탱크2'를 중심으로 조성된 숲길과 수로, 초화류 식재는 콘크리트와 식생의 조화를 통해 공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민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대한민국조경대상, 서울시공공디자인대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며 조경 중심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문래창작촌 (서울 영등포)
서울 문래동은 한때 철강산업의 중심지로, 용접기계 소리와 철제 절단음이 가득했던 산업지대였다. 산업 쇠퇴 이후 많은 공장이 문을 닫고 폐쇄되었지만, 2000년대 초부터 예술가들이 이 공간에 입주하면서 문래창작촌이란 이름으로 탈바꿈하였다. 조경은 이 변화의 배경이자 기반이 되었다.
기존 철제 구조물과 골목길의 노출된 콘크리트를 보존하면서도, 곳곳에 예술작품과 조형물 정원, 포켓가든을 배치하고 철재소 주변을 그늘식물과 덩굴류로 녹화하였다. 야간에는 구조물을 강조한 간접조명이 설치되어 공간이 가진 '산업의 미학'을 감성적으로 부각시킨다. 철제와 녹지, 예술이 공존하는 문래창작촌은 관광객에게 독특한 도시경관을 제공하며, 조경이 문화재생의 조력자가 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 ‘문래동 그린폴(Green Pole) 골목정원’ 조성
- 주민과 함께하는 ‘가드닝&미니콘서트’ 개최 등
인천 아트플랫폼 & 제물포구락부 일대
인천 개항장은 19세기 말 조선의 개항 이후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이 들어온 장소다. 항만 기능이 쇠퇴한 뒤, 근대창고와 공공건축물들은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 2009년 시작된 인천 아트플랫폼 프로젝트는 이 공간을 예술창작과 시민참여가 공존하는 문화재생지로 변모시켰다.
조경은 붉은 벽돌의 근대건축과 해안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바닥은 석재와 전통 패턴 포장을 결합하고, 철제 조형물과 함께 선창에 자생하던 염생식물 및 항만식물을 도입하였다. 또한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과 연계한 순환 동선을 설계해 관광객의 동선을 유도하고, 역사적 정체성을 교육 콘텐츠와 접목했다. 이는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을 제공하면서 장소성과 도시관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조경계획 모델이다.
전주 팔복예술공장
전주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옛 방직공장을 개조한 팔복예술공장은 2017년 전주시와 지역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전시관, 공방, 북카페, 창작 스튜디오 등이 들어서며, 예술과 산업이 만나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
조경 설계는 '거칠되 따뜻하게'라는 컨셉 아래, 콘크리트 벽면과 철제 구조물을 그대로 유지한 채, 빈 공간에는 벽면녹화, 옥상정원, 바닥 수로를 계획했다. 폐자재를 재활용한 조경시설물, 고사된 나무를 활용한 조형 벤치 등은 조경의 지속가능성 개념을 잘 보여준다. 또한 예술공방 외부에는 초화류와 그늘 식생을 중심으로 소규모 야외공연과 버스킹이 가능한 잔디마당을 마련했다. 이곳은 산업유산과 예술경관, 그리고 조경의 결합이 이루어진 대표 사례다.
4. 해외 주요 사례 소개
졸퍼라인 공업단지 (독일 에센)
졸퍼라인(Zollverein)은 독일 루르 산업지대에 위치한 폐석탄광 단지로, 1932년까지 유럽 최대의 석탄 채굴 및 코크스 생산지였다. 1986년 광산 운영이 종료된 이후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독일 대표 산업유산 관광지로 거듭났다.
조경 설계는 폐광산의 강한 산업미와 광활한 공간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자연이 스며드는 복합형 경관 설계를 채택했다. 철제 구조물과 벽돌 건물 사이로 자생 식생을 보존하고, 철길 위에 보행 데크를 설치해 동선과 전망을 동시에 확보했다. 기존 코크스 타워를 그대로 유지하되, 주변에는 억새군락과 자작나무림, 콘크리트 블록을 조화롭게 식재하여 '시간이 만든 경관'을 연출했다. 야간에는 라이트업 조명을 통해 산업구조물의 선과 재료감을 강조하였다.
졸퍼라인은 박물관, 예술전시관, 수영장, 카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품고 있으며,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조경은 이 공간이 과거의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는 핵심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
라빌레뜨 공원 (프랑스 파리)
라빌레뜨(Parc de la Villette)는 파리 북동부 옛 도축장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전환한 사례다. 1982년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의 설계는 해체주의 건축과 조경의 실험적 융합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산업적 장소성과 차가운 금속성 이미지를 유지한 채, 빨간색 파빌리온 구조물(folies) 26개를 공원 전역에 배치하고, 이를 조경 동선, 수변공간, 초현실주의적 식재 공간과 연결했다. 조경 설계의 핵심은 테마와 체험의 연속성이다. 넓은 잔디광장은 자유이용 공간으로 개방되며, 미스트 안개정원, 연못, 대나무숲 등은 시각과 감각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원은 시테 드 라 뮤직(음악도서관), 과학관, IMAX극장 등과 연계되며 연중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경관으로 자리 잡았다. 라빌레뜨는 조경이 단순한 녹지 조성이 아닌 문화적 실험과 도시 공간의 재해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5. 조경 설계의 핵심 전략 요소
- 보존과 해석 : 원형 보존과 재해석을 병행하여 장소의 정체성 강화
- 복합 동선 구성 : 역사 탐방 + 휴식 + 놀이 + 교육이 가능한 체험구조 설계
- 식재 전략 : 생태적 복원 vs 조형적 식생 도입의 균형
- 야간경관 : 산업공간의 구조미를 활용한 라이트업 연출
- 안전과 접근성 : 노후 구조물 활용 시 이용자 안전 확보 설계 필수
- 대상지 이해와 종합계획 수립 : 토지이용, 문화자원, 산업사적 맥락을 분석한 공간 전략 수립
- 관광지 테마 및 차별화 전략 : 스토리텔링, 브랜드 디자인, 지역성 강조를 통한 상품 차별화 계획
6. 마무리 – 사라진 공간에서 미래를 짓다
조경은 폐산업시설 재생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실용성과 감성을 모두 갖춘 접근을 제공한다. 단순히 식물을 심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과 환경, 사람과 기억을 연결하며 지속가능한 관광지로 이끄는 힘이 바로 조경에 있다. 쇠락한 공간에 다시 사람의 발길이 닿게 만들고, 거기서 새로운 이야기를 싹 틔우는 것. 그것이 산업유산 재생에서 조경이 가진 진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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