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담장, 연못, 소나무 : 한옥 조경의 핵심 요소를 현대화하다
한옥 조경은 자연과의 조화를 극대화한 한국 고유의 조경양식이다. 건축과 조경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생활 공간 속에서 자연을 끌어안고 머무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 중심에는 담장, 연못, 소나무라는 세 가지 대표적 요소가 존재한다. 각각은 공간을 나누고, 풍경을 만들며, 정신적 상징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조경 구성 요소다.
이 글에서는 한옥 조경의 상징적인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현대 조경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경계가 아닌 풍경이 되는 담장
한옥의 담장은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다. 돌, 흙, 기와, 나무 등 다양한 자연 재료를 사용하여 시각적 풍경이 되는 벽으로 기능한다. 높낮이가 고르지 않고 재료에 따라 색과 질감이 달라지는 이 담장은 내부에서 볼 때 하나의 정원이 된다.
현대적 재해석
- 투시형 담장 : 전통의 ‘사립문’과 ‘살창’을 현대적 재료로 재해석해 시야를 일부 허용하는 투시형 담장을 구현한다. 이는 심리적 개방감과 시각적 연속성을 제공한다.
- 디자인 월(Garden Wall) : 흙벽 또는 나무 위에 전통 문양을 CNC 커팅하거나 레이저 조각으로 표현하여 장식성과 전통미를 동시에 확보한다.
- 다층 구조의 담장 : 외부는 도시적 재료(콘크리트, 금속), 내부는 전통 재료(한식 기와, 흙벽)를 혼합하여 외부 맥락과 내부 정서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든다.
사례
- 서울 북촌의 공공 한옥 리모델링 사업에서, 일부 담장은 유리와 한지를 병합하여 빛이 들어오는 벽으로 전환되었다.
- 수원의 한옥마을 전시관은 전통 담장 위에 조명과 스토리보드를 설치해 경관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정원 속 우주의 축소판, 연못의 현대적 구현
한옥 정원에서 연못은 단순한 수경 시설이 아닌 우주와 철학을 상징하는 중심 공간이다. ‘방지원도’라 불리는 사각형과 원형의 조합은 인간과 자연, 인공과 자연의 융합을 표현하는 상징체계로 해석된다.
현대적 재해석
- 거울연못(Mirror Pond) : 전통의 정형적인 방지원도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얕고 넓게 펼쳐진 반사 연못으로 설계. 주변 경관을 수면에 담아 시각적 확장을 꾀한다.
- 활용형 수경시설 : 연못 내부에 수생식물을 식재하거나, 징검다리와 연결된 휴게 공간으로 연계하여 단순 감상이 아닌 체험 공간으로 재구성.
- 조명과의 결합 : 야간에는 하부 조명과 연못 테두리 라인 조명을 통해 수면 위 정원 느낌을 연출.
사례
- 전주 한옥마을 내 한옥호텔 ‘락고재’는 연못 중심의 중정을 구성해 방마다 정원을 마주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 경기 광주의 전통문화체험관은 방지원도 모티브를 기반으로 현대식 방수처리 연못을 조성하고 LED 조명을 활용해 야간에도 정원의 미를 강조한다.
상징성과 구조미의 소나무, 조형물로 확장되다
소나무는 한국 조경의 상징적 식물이다. 굳건함과 절개를 상징하며, 사계절 푸른 빛으로 정원의 중심 축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옥에서는 입구, 마당, 후원 등 주요 공간에 소나무를 배치해 공간의 위계를 나타낸다.
현대적 재해석
- 보존된 소나무와 공간 재구성 : 기존 수목을 존치하고 그 주변에 순환형 동선 및 데크, 쉼터를 배치하는 방식
- 조형적 식재 : 소나무의 비정형 수형을 강조하기 위해 LED 라이트업, 석재 기반 위 고립 식재 등으로 조형미를 살림
- 미디어와 결합된 소나무 : 인터랙티브 전시에서는 소나무의 실루엣을 센서 기반으로 추적해 ‘바람, 계절,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디지털 조경 요소로 활용
사례
- 2025년 세종문화회관 ‘미음완보’ 전시에서는 소나무가 직접 표현되진 않았으나, 창덕궁 후원 등의 실측 데이터를 통해 전통정원의 나무 수형과 배치를 고스란히 반영하여 디지털 소나무의 정서적 가치를 실현했다.
- 수원 화성의 화홍문 생태정원 조성 사례에서는 기존 소나무 수형을 보존하고, 그 주변에 휴게 데크와 야간 조명을 결합한 공간 연출을 통해 역사성과 현대적 감성을 공존시켰다.
마무리 : 전통 조경의 현대화는 재창조가 아닌 재해석이다
담장은 경계가 아니라 관계의 장벽이며, 연못은 장식이 아닌 사유의 수면이고, 소나무는 식물이 아닌 정신의 수직축이다. 한옥 조경의 핵심 요소들은 이처럼 그 자체가 철학이자 구조이다.
현대 조경은 이들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현대의 재료와 기술로 다시 이야기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전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오늘의 삶으로 이식하는 조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통의 현대화’이며, 조경 디자이너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Landscape Design and Trend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통조경과 국가유산수리 제도 : 법령 중심의 이해 (0) 2025.04.12 자연과 함께 숨 쉬는 공간 : 자연주의 조경의 전통적 뿌리 (0) 2025.04.11 한국 전통 정원의 미, 현대 조경에 녹여내는 3가지 방법 (0) 2025.04.10 고령자 친화 조경 체크리스트 : 동선, 식재, 감각자극까지 (0) 2025.04.10 실버타운·요양시설 조경 사례 분석 : 편안함을 설계하는 법 (0)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