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 조경이 설계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조경이 바꾸는 관광의 힘

 

관광지 조성에서 조경이 하는 일 : 공간을 설계하는 그 이상의 가치

 

1. 들어가며

 

우리가 찾는 관광지는 단순히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 공간이 주는 감동, 머무는 동안의 편안함, 기억에 남는 경험이 하나의 패키지로 다가올 때 비로소 '관광지'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이지 않게 공간을 설계하고 풍경을 연출하며 사람의 동선을 계획하는 조경의 역할이 숨어 있다. 관광개발사업이 자연·문화·사람이 어우러진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라면, 조경은 그 모든 요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생명력 있는 관광지를 만들어내는 핵심 분야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한 녹지 조성이나 미관 향상을 넘어, 체류형 관광지 조성, 관광객의 정서적 만족도 향상,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르는 폭넓은 효과가 입증되며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관광지 조성에서 조경의 역할은 건축과 토목, 문화 콘텐츠를 연결하는 매개이자, 방문객의 '체험 동선'을 디자인하는 총체적 계획 영역이다. 특히 자연 생태자원과 문화유산, 지역의 맥락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데 조경 전문가의 해석력과 기술력이 필수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점에서 조경은 관광정책과 지역브랜딩 전략의 중심축이 되어가고 있다.

순천만국가정원

 

 

2. 조경이 개입하는 관광지의 주요 영역

 

1) 관광지 마스터플랜 수립

 

관광지의 성공은 단지 인프라의 확충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방문 동선, 테마 설정, 경관 포인트, 수목계획 등이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조경가는 이러한 통합적 공간계획을 담당하며, 관광지 전체의 '경험 흐름'을 설계한다.

• 예시 : 제주올레길의 설계는 조경적 관점에서 지역 경관자원을 연결하고 동선을 정비하여, 단순한 걷기 코스를 세계적인 걷기 여행 브랜드로 발전시킨 사례다.

 

2) 자연경관 및 테마 공간 조성

 

조경은 자연을 보존하면서도 사람의 이용을 고려한 공간을 만든다. 산책로, 전망대, 휴게공간, 계절 정원, 생태숲, 수경시설 등이 대표적이며, 이를 통해 관광객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체험하고 감상할 수 있다.

• 관련 기술 : 계절 식재 전략, 저관리형 식생 설계, 생태습지 연출, 조명 디자인 등.

 

3) 문화·역사자원 해석 및 경관화

 

문화유산이나 역사공간은 단순히 보존만으로는 관광지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 주변 공간을 어떻게 연출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조경은 문화재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관을 구성한다.

• 예시 : 공주 공산성 일원 정비사업에서는 성곽과 주변 조망을 조화롭게 연계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4) 동선계획 및 체험 동선 설계

 

관광객이 어떻게 들어오고, 어디를 거쳐, 무엇을 경험하고 돌아가는지의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조경은 동선의 효율성과 안전성, 시각적 연출, 쉼터 배치, 편의시설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 사례 :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은 도로를 사람 중심의 보행 경관축으로 재설계해 체험형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5) 야간경관 및 미디어연출

 

관광지의 운영시간이 확대됨에 따라, 야간 경관 조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조경은 식생, 수경, 구조물, 조명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감성적인 야경을 연출한다.

• 사례 : 경주의 동궁과 월지 야경은 역사성과 현대 조경설계가 조화를 이루며, SNS에서 확산력을 가진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6) 생태복원 및 지속가능성 확보

 

무분별한 관광개발은 환경을 해치기 쉽다. 조경은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추구하며, 식생 복원, 우수처리, 자연형 수로 계획 등을 통해 친환경적 관광지를 조성한다. 이는 ESG 경영, 탄소중립 시대의 필수 요소다.

• 사례 : 아산 외암민속마을 생태복원 프로젝트에서는 조경이 토종 수종 복원과 전통 수로 재현을 통해 역사경관과 환경을 동시에 되살렸다.

 

 

3. 실제 사례로 본 조경의 관광적 가치

 

순천만 국가정원 : 정원관광의 대표 브랜드

•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조성된 순천만 국가정원은 조경의 기획력으로 형성된 국내 최초의 국가정원이다. 자연습지를 중심으로 13개국의 정원을 테마화하고, 수목, 수생식물,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해 연간 600만 명 이상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정원 관광지로 성장했다.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연간 4,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제주 녹산로 벚꽃길 : 계절경관과 조경

• 제주의 대표 경관도로인 녹산로는 봄이면 벚꽃과 유채꽃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이 식재 연출은 단순한 미관을 넘어, 도로 경관계획과 계절 경관 유지 관리를 전제로 조성되었으며, 매년 수십만 명이 찾는 계절형 관광지로 기능하고 있다.

 

경주 동궁과 월지 야간경관 연출

• 고대 신라 궁궐터에 현대 조명과 수경 설계를 결합한 대표적인 역사경관 조성 사례. 수면 반사, 정원식 배경 조명, 입체 조경기법 등이 적용되어 역사성과 감성을 동시에 전달하며,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해운대 블루라인파크와 수변 경관 조성

• 폐선부지를 재활용하여 만든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는 조경계획을 통해 동해의 바다와 해변 숲길을 연결하고, 친수공간과 해변 전망대를 설치하여 걷고 싶은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4. 조경의 가치 : 공간을 넘은 경험 설계

 

조경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일이 아니다. 조경가는 경관과 이용자의 감성을 동시에 이해하며, 관광지라는 장소에서 ‘기억될 경험’을 설계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풍경뿐 아니라, 걷고 머물고 이야기 나누고 사진 찍는 그 모든 순간이 조경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조경은 관광지의 브랜딩 전략과도 직결된다. 관광지가 ‘찍히고, 소비되고, 회자되기’ 위해서는 공간이 주는 메시지와 분위기가 중요하며, 이는 조경을 통해 실현된다. 또한 지속가능한 관광 운영을 위한 저영향개발(LID), 수질관리, 토종식생 활용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조경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5. 마무리하며

 

관광은 단기적 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종합문화산업이다. 조경은 그 안에서 공간을 넘은 '경험'을 설계하며, 관광지의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의 관광지가 조경을 통해 새롭게 정의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걷고, 쉼을 얻고, 기억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 관광지 개발을 논할 때 조경은 더 이상 부속 요소가 아니다. 조경은 시작이고 중심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는 길을 설계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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